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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억제제 끊는 신장이식 개척’ 따뜻한 '칼잡이'

 면역관용 이식수술 뒤 아기를 낳은 환자 부부, 박 교수와 장혜련 교수(뒤 오른쪽). 담당 간호사.[/caption]박재범 교수는 국내에서 면역관용 이식수술의 세계를 개척해서 만성신장염 환자가 면역억제제 없이 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애쓰는 의사다. 또, 뇌사자 이식의 범위를 확대하고 가족 간 교환이식을 통해 이전에는 이식 순번만 기다리다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숱한 만성신장염 환자를 살리고 있는 ‘칼잡이’이기도 하다.

그는 초등학교 어린나이에 “대통령도 영부인이 피격됐을 때 의사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구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한번, 두 번, 3수 끝에 들어온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본교 병원이 아니라 삼성서울병원에서 했다. 대학 때 이상하게도 몇 차례 현장실습마다 삼성서울병원으로 배정됐고, 마음이 끌렸던 정형외과 분야에서 하권익, 안진환, 박윤수, 이종서 교수 등 스타 교수들이 포진한 것이 가슴을 끌었다.

박 교수는 인턴 도중 외과 파트를 돌 때 ‘갑질 선배’를 피하려고, 대학 때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이식외과에 지원했다가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병실에서 간 이식을 앞둔 50대 초반 대기업 임원의 항문 관장을 하고 있을 때, ‘간 이식수술 대가’ 조재원 교수가 환자의 얼굴을 보려고 병실에 들렀다. 환자가 조 교수를 쳐다볼 때의 간절한 눈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이거다, 내 길은, 이토록 삶을 갈망하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

박 교수는 인턴 마칠 무렵 조재원 교수를 찾아가서 “이식외과 가고 싶다!”고 지원했고, 이듬해 삼성서울병원 인턴 출신의 첫 외과 전공의가 됐다. 위암, 대장암, 유방암 등 온갖 수술을 돕다가 군의관을 마치고 전임의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이식외과에 배치됐다. 전공의처럼 밤을 잊고 일했지만, 교수직에 두 번 연거푸 미끄러졌다. 다른 곳으로 가라는 이야기인지 고민이었고, 무작정 교수직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는 이식외과에서 결원이 생긴 두 병원 중에 고민하다가 서울아산병원 한덕종 교수의 문하로 들어갔다. 이 때문에 원래 가슴에 품었던 간 이식 대신 신장, 췌장으로 세부전공이 바뀌었다. 신장, 췌장 이식수술의 태두로서 국내 최다 수술기록을 갖고 있던 한 교수는 “당분간 학회고 뭐고, 밖에 나갈 생각하지 말고 집 지켜라”는 엄명을 내렸다. 첫해는 1년에 3일 휴가 외에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고 다음해, 그 다음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무렵 친정인 삼성서울병원 김성주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식이 있다고 하니, “아무리 늦어도 들러라”고 했다. 술이 알딸딸한 상태에서 김 교수를 찾아갔다가, 상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가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 수술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연구하면서 새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어떨까?”
“저도 생각을 해봐야하고, 아내와 상의해서….”
“왜 부인 핑계를…, 본인의 생각이 중요하지 않나?”
“그래도…”
“돌아온다는 확답을 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가네.”

박 교수는 집에 가기위해 할 수 없이 승낙하고, 다음날 한덕종 교수에게 보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가는 노발대발했다. 그래도 발길이 ‘친정’으로 향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박 교수는 1주일 만에 짐을 싸서 친정으로 되돌아와 김성주 교수와 새 영역을 개척해나갔다.

박 교수는 자신이 돌아오기 직전에 김 교수가 처음 성공한 면역관용 이식수술을 함께 발전시켜나갔다. 이 수술은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을 비롯한 3곳에서만 성공했고, 삼성서울병원이 4번째였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16건을 실시했다. 초기에는 수술은 잘 끝났지만, 전체로서는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다.

“면역억제제 조절이 안 돼 다시 복용해야 했던 30대 여성, 감염 때문에 신장 기능이 급격히 나빠져 새로 이식수술을 받아야 했던 환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지요. 실패사례를 거울삼아 개선을 거듭해서 지난해부터는 모두 성공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환자 유형별 면역관용 이식법을 정립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버드대 팀이 주관하는 ‘이식 연구회’에 세계 대가들과 함께 초대 받고 있으며, 2019년 ‘환자종류별 면역관용 이식방법’ 논문을 《트랜스플랜테이션》 지에 발표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뇌사자의 신장을 이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서 숱한 환자를 살리는데 기여했다.

“김성주 교수는 ‘뇌사자의 기증 장기는 소중한 사회적 자원이어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헛되게 버려져서는 안된다’고 가르쳤어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공여자 신장은 젊을수록 좋다는 명제에 갇혀 60대 뇌사자의 신장은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50, 60대에 투석 시작한 환자에게는 유용할 수도 있는데….”

박 교수는 이전에는 버려졌던 신장을 적합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확장범주 뇌사자 이식’으로 매주 1명의 생명을 살렸다. 다른 병원에서는 처음에 무리한다고 수군댔지만, 환자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한 해 200여 건 이식수술 가운데 70여 건이 뇌사자 신장 이식이다. 밤에 수술을 시작해서 5~6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밤중이나 새벽에 끝나기 일쑤다. 이식외과 의사는 밤에 수술했다고 해서 그 다음날 환자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 오전 2시 반 이전에 끝나면 집에 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병원 연구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 정상근무를 해야 했다.

“지금은 다른 병원에서도 확장 범주 뇌사 기증자 수술을 많이 하는 바람에 우리 병원의 수술 건수가 줄어들어 집에 갈 일이 많아졌습니다. 뇌사자의 소중한 신장을 시급한 신장염 환자에게 이식하는 경향을 이끈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박 교수는 또 가족이 신장을 주고 싶지만 조건이 맞지 않을 때, 다른 가족에서 조합을 찾아서 보다 많은 환자에게 혜택이 가도록 하는 ‘교환이식’을 국내 최초로 성공시켰다. 2014년 6월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이식을 포함, 세 쌍의 부부가 연달아 신장을 주고 바는 교환이식에 성공해서 다른 의사들에게도 모델이 됐다.

박 교수는 2019년 스승 김성주 교수가 돌연 바이오기업 ‘제넨바이오’의 대표로 가는 바람에 후배 이교원 교수와 함께 신장이식의 세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김 교수와 박 교수는 2014년 면역반응을 제어할 수 있는 형질전환 돼지의 췌도를 원숭이에게 이식해서 정상 혈당을 유지하는데 국내 최초로 성공했는데, 김 교수가 영장류 실험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회사로 자리를 옮긴 것.

“김 교수가 돈을 벌려고 병원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영장류 임상시험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장래가 보장되는 교수직을 내던진 것이지요. 서울대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 가천대의대 길병원 등과 함께 영장류 동물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는 매주 2, 3명에게 신장 수술을 하고 복강 육종 환자 2명을 수술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매주 화요일에는 서울대 의대로 영장류 동물실험을 하러 간다. 인터뷰도 화요일 오후 짬을 내서 이뤄졌다. 그 외의 시간은 자신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 자신뿐 아니라 이식외과 의사 대부분의 그렇다고 했다.

“이식수술은 환자와 기증자의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수술계획이 시시각각 바뀝니다. 뇌사자는 환자를 기다려줄 수가 없지요. 갑자기 2순위 대기자가 1순위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식외과 의사는 아침에 ‘오늘 저녁에 일찍 온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직업입니다.”

바쁘다고 환자에게 소홀히 할 수 없다. 인터넷에서 박 교수 이름을 검색하면, 환자에 정성을 쏟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일요일에도, 공휴일에도, 심지어 명절 연휴에도 수시로 병실에 들러서 환자의 상태를 살핀다.

“수술만 잘 한다고 좋은 외과 의사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이식수술은 특히 예후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면역력, 감염, 신장기능 등에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가 있습니다. 환자에게 건강한 삶을 선물하는 의사만큼 더 행복한 의사가 있을까요? 설령 상상치 못한 이유로 환자에게서 기대를 벗어난 결과가 나오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더 연구하고, 더 환자들에게 정성을 기울여야 할 이유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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