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하자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마지막 편지’라는 제목의 글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의학적 상식으로는 이 편지가 가짜일 수밖에 없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 역시 “가짜”라고 확인했다. 이 글은 1년 전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 등에 확산됐다가 진위를 의심받았던 적이 있다.
‘나의 편지를 읽는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라는 제목이 붙은 이 편지는 이건희 회장이 손으로 쓴 마지막 글이라는 소개와 함께 퍼지고 있다. 내용은 가슴을 잔잔하게 울릴만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편지는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이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 한번 살아보세요”로 시작한다.
글에서는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요?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 되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 진 차 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겠지요. 내가 한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직위가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한탄한다.
편지는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로 마무리 짓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할 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기를…힘없는 나는 이제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줄 뿐이요!”라고 매듭을 짓는다.
그러나 이 회장은 2014년 5월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려져 인근 순천향대서울병원을 거쳐서 6년 5개월 동안 삼성서울병원 20층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어떤 글이나 말도 전하지 못했다. 2017년 TV조선이 이 회장이 어느 정도 회복해서 TV의 애니메이션 화면을 보고 있다고 흐릿한 화면을 ‘특종보도’했지만 정확한 실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편지의 내용이 이 회장의 평소 철학이나 표현방식과 거리가 있다는 점은 차치하고, 의학적으로도 비상식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평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손은 ‘도구적 인간’을 가능케 한 정교한 인체 부위다.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다른 증거가 없어도 엄지 하나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의 엄지손가락이 갖는 아귀힘은 다른 동물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으며 온갖 신경과 근육, 뼈 등의 합작품이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뇌의 일부”라고 말했을 정도로 뇌와 밀적한 연관이 있다.
이 회장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순천향대서울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긴급 스텐트시술을 받았지만, 시간을 지체해서 심장이 뇌에 피를 공급하지 못해 뇌손상이 왔고 이 때문에 병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뇌손상 환자가 자필로 글을 쓰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몸이 대부분 회복됐다는 의미다. 사고능력과 함께 운동신경이 대부분 회복돼야 가능하다.
S병원 신경외과의 한 교수는 "뇌손상 탓에 온몸이 마비됐던 환자가 펜을 잡고 글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거의 회복됐다는 뜻"이라며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병실 바깥에서 왕성하게 재활훈련을 받고 바깥활동을 하는 게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고인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 온라인에서 확산되고 있는 편지는 이건희 회장을 빌어 누군가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한 것일 뿐, 진짜 일수는 없는 과학적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