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0세에 접어든 최모씨는 20~30년 전 맞벌이를 하는 딸을 위해 손주를 맡아 키웠다. 연년생인 남자 아이 2명을 하루 종일 등에 업고 달랜 적도 많았다. 최씨는 10년 전부터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다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지금도 통원 치료를 받는 그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지 못한다. 구부정한 모습보다 통증이 더 문제다. 최씨처럼 ‘손주 육아’의 후유증으로 허리. 무릎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중년의 건강 위기와 겹친 ‘손주 육아’
이른바 ‘디스크’로 잘 알려진 추간판 탈출증은 척추뼈와 척추뼈 사이에 존재하는 추간판(디스크)이 손상을 입으면서 추간판 내부의 젤리 같은 수핵이 빠져 나와(탈출) 주변의 척추신경을 압박하는 병이다. 나이가 들면 수핵의 수분 함량이 줄어들어 추간판이 탄력을 잃게 된다. 50세가 넘으면 수액 수분이 70~75% 정도로 감소해 추간판의 충격흡수능력도 떨어진다(질병관리청 자료). 이런 상태에서 아이를 업으면 추간판이 과도한 힘을 받게 된다. 섬유 연골과 섬유 조직이 찢어지거나 파열되면서 뒤쪽으로 돌출해 디스크 위험이 높아진다.
◆ 하루 종일 안고, 업고... 중년의 허리 건강에는 ‘독’
나이 때문에 이미 디스크가 약해져 있는 중년-노년층이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 종일 안고, 업고, 씻기다 보면 허리에 무리가 가기 쉽다. 보채는 아이를 달래느라 안거나 업은 상태에서 집안일까지 하면 허리 건강에 매우 나쁘다. 아이를 안은 채 앉으면 서 있을 때와 비교해 몇 배의 압력이 가해진다. 아이를 계속 안고 있으면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려 허리가 앞쪽으로 휘어져 ‘디스크’의 위험이 증가한다.
◆ 이미 근육 줄고 뼈 약해졌는데.. 손주 업어 키우면
건강한 사람도 40세가 넘으면 매년 근육이 줄어든다. 심하면 한해에 1%씩 감소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여성은 폐경기로 인해 여성호르몬이 줄면서 뼈와 관절도 약해진다. 이런 몸 상태에서 손주 육아까지 맡은 것이다. 아이를 업고 있으면 척추에 과도한 하중이 실리면서 미세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인 척추관이 좁아지는 척추관 협착증의 위험이 커진다. 이 병은 50~60대 여성 환자가 가장 많다. 아이를 업고 있으면 과도한 힘이 무릎 관절에도 실리게 된다. 허리 뿐 아니라 무릎 건강도 해칠 수 있다.
◆ 보행기-유모차 이용.. 온몸을 써서 허리 부담 줄여야
중년-노년의 허리,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를 업기보다는 보행기나 유모차를 꼭 이용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업어야 할 때도 30분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아이를 안을 때는 허리힘만 쓰면 안 된다. 몸을 낮춰 무릎을 꿇고 하체 전체의 힘을 이용해 안아야 안전하다. 젊은 사람도 무거운 물건을 들 때 허리에만 힘이 쏠리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온몸을 이용해서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안는 게 최선이다. 틈틈이 온몸을 쭉 펴거나 허리를 좌우로 돌리는 등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척추건강에 도움이 된다.
◆ “맞벌이 부부들, 내 아이만큼 부모 건강도 신경 쓰세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참 힘들다. 특히 중년, 노년층의 육아는 30, 40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몸이 퇴행기에 접어든 시점의 육아는 직접적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다. 허리, 무릎이 나빠지면 건강수명(건강하게 장수)의 최대 장애가 될 수 있다.
아이를 맡기는 맞벌이 부부들은 내 아이만큼 부모 건강도 신경 써야 한다. 직장 일보다 하루 종일 손주를 돌본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동 강도’가 더 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척추 건강을 위한 조언도 전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국가 차원의 유아 돌봄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를 가족에게 의존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허리는 90세가 되어서도 꼿꼿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