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수면 아래 200m~1000미터 영역은 동틀 무렵이나 해질 무렵 정도의 햇빛만 비친다. 그래서 영어로 ‘바다의 황혼지대(twilight zone of the ocean)’ 또는 약광층(弱光層)이라고 부른다. 약광층에는 거대한 눈과 빛나는 생물 발광 피부를 가진 특이한 물고기를 포함해 다양한 유기체가 서식한다.이 약광층에 서식하는 해양 균류에 대한 유전자 분석이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페니실린에 필적할 신약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16일(현지시간) 《과학의 최전선들(Frontiers in Science)》에 발표된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 해양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내용이다.
이번 연구는 해양 DNA에 대한 역대 최대 규모 연구로 꼽힌다. 연구진은 2009년 시작된 4년간의 타라(Tara) 해양탐사와 2010년 말라스피나(Malaspina) 원주항해탐사 등 항해로 수집한 샘플에서 3억1700만개 이상의 유전자 목록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특히 약광층에 서식하는 수많은 곰팡이의 존재에 대한 흥미로운 비밀들을 밝혀냈다. 논문의 주저자인 KAUST의 엘리사 라이올로 연구원(해양학)은 이 심해의 극한환경에 서식하는 엄청나게 많은 균류가 육지에 서식하는 균류와 전혀 다른 유전적 특징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논문을 검토한 미국 스크립스해양학연구소의 파비오 파보레토 연구원은 “페니실린은 원래 페니실리움이라고 불리는 곰팡이에서 온 항생제인데 해양 곰팡이에서도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약광층의 환경적 특징인 고압, 빛 부족, 추운 온도라는 극단적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곰팡이의 진화가 “잠재적으로 독특한 생화학적 특성을 가진 새로운 종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책임자인 KAUST의 카를로스 듀아르테 교수는 바이러스가 유전자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자를 다른 미생물의 유전자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한 생물체에서 다른 생물체로 유전자를 이동시킨다”며 “바이러스는 이렇게 유전적 생물 다양성을 만들고 진화를 가속화한다”고 설명했다.
해양 미생물의 진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유전자 진화속도도 빨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두아르테 교수는 “최근 해양오염 물질로 급격히 많아진 탄화수소에서 유래한 합성 고분자를 분해할 수 있는 유전자가 발견됐다”면서 ”해양 플라스틱 오염이 발생한 세월이 수십 년만에 관련 유전자 진화가 빠르게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양 생물과 그 유전자를 활용하는 해양생명공학 시장은 현재 약 60억 달러(약 8조원) 규모로 2032년까지 거의 두 배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라이올라 연구원은 슈퍼컴퓨터와 유전자서열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과거보다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됐다고 그 이유를 짚어줬다.
그러나 일부 국가가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가진 해양 생물 유전자를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두아르테 교수는 “현재 10국이 해양 유전자 특허의 90%를 갖고 있다”며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할 슈퍼컴퓨터 인프라가 부족한 남반구 국가들은 해양 유전자의 혜택을 공유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다행히 이러한 소유권 규정에 대한 변경이 이뤄지고 있다. 두아르테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해양 유전자를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소유하라는 새로운 조약이 발효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이익을 공유하도록 했는데 그 이익 공유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science/articles/10.3389/fsci.2023.1038696/full)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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